국민대학교
2014학년도 영화전공 정시모집 기출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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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보드 구성
아래의 작품을 읽고 24컷 이내의 스토리보드로 구성하시오.
※국민대 홈페이지 입학안내 정시 자료실에 ‘실기고사 예시 문제 및 답안 작성 사례’ 있으니 참고할 것.
“물이 새요.”
아래층에서 사내가 올라왔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일 고치라고 하지요. 지금은 어두우니깐.”
“물은, 어둡다고 안 새는 게 아닙니다.”
사내의 말은 당연했다.
“물이 어디서 새는지 어두운데 어떻게 알아요.”
어머니의 말도 일리가 있다.
“천장에서 샌다 말입니다. 천장이 아니라면 내가 뭣 하러 이층으로 올라왔겠습니까?”
사내는 진리를 말했다.
“천장의 어디가 새는지 못 찾는다고요.”
어머니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물이 떨어지는데서 아이들을 재울 수는 없지요. 방에 텐트를 칠 수도 없고.”
방은 텐트를 치기에는 좁다. 천장이 있는 방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 발상은 흥미롭지만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상 드문 일을 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를 초빙하기로 했다. 초빙하는 주체는 어머니이나 초빙 실무를 맡은 사람은 사내였다.
철물점 주인이 왔다. 그는 낮에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어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어제 철물점 주인은 자살을 하겠다고 동네 사람들을 위협했다. 누군가 다른 동네의 철물점에서 못을 사왔거나 그가 모르게 보일러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가 일 끝나면 저녁마다 앉곤 하는 구멍가게의 평상에 낯모를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또한 놀랍게도 그의 아내가 밥에 돌 두 개를 섞는 실수를 저질렀다. 섞었는지, 섞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돌이 제 발로 걸어왔을 리는 없으니 섞었다고 주장했다. 돌은 발이 없다는 것이다. 또 자기는 닭이 아니며 따라서 모래주머니가 없는데도 돌을 먹을 뻔했다는 것이다. 돌과 모래는 다른 것이지만 누구도 그의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럼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의 가게에서만 철물을 사야 하는가, 아니면 못짓을 할 때마다 그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지구상에서 이 동네 사람들이 아닌, 나머지 육십억 인류는 그가 앉는 평상에 앉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도 이 논쟁의 중요한 초점이 아니다.
중요한 건 무엇인가. 그가 죽겠다고 동네 사람들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그는 집 앞 전봇대에 올라가 전깃줄로 목을 매든가, 감전사를 하겠다, 아니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주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벌이는 그 월례 행사에 참견할 사람은 더더구나 없다. 요즘은 파출소에서도 구경 오지 않는다.
그가 어머니에게 사과하는 것은 집과 그의 가게가 마주보고 있고 어머니의 이층 방이 그의 전봇대 소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강제적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긴 그즈음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셨다니 정말 그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철물점 주인은 아래층 사내의 방에 들어가 물이 얼마나 새는지 관찰했다. 그는 다락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흘러나온다는 말에 충격을 받을 어머니는 아니다. 쏟아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원인이 뭘까요?”
“글쎄. 집이란 그렇지요.”
철물점 주인의 말에 의하면 집이란 정말 괴상하고 신비한 것이다. 무너져야 하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 있고 천년만년 무너지지 않을 집도 하루아침에 넘어간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물이 새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아래층 사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철물점 주인은 다시, 자기가 옛날에 세를 살 때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사흘 동안 천장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다락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정도로 자다 익사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은 그때 차라리 배를 한 척 만들까 생각도 해봤다고 덧붙였다. 거기에 모터를 달 것인지, 재래식 노로 운항 할 것인지도.
“그럼 고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아래층 사내는 화가 난 듯했다. 그는 친한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말투로 그리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철물점 주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철물점 주인도 그걸 느꼈는지, 아래층 사내를 한번 가볍게 흘겨보고 말했다.
“며칠 있어봐야 안다는 거야. 이 물이 무슨 물인지 모르니까. 고여 있던 빗물일 수도 있고 수도가 새서 그럴 수도 있고 하수도가 고장 나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변기에서 새는지도 모르지.”
아래층 사내 역시 그리 친하지 않은 철물점 주인이 친한 사이처럼 반말을 하자 화가 났다. 자신이 그랬다는 것은 잊고.
“그런데 기다려봐야 안다고? 똥물이 떨어지는 방에 애들을 재우란 말이야?”
철물점 주인은 그건 자기 탓이 아니라 집 탓이고 아래층에 사는 사람의 불운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안 새는 수도 있거든. 도로 말짱해지는 거야. 괜히 뜯었다가 새는 데도 없으면 골치만 아프단 말이야.”
이제 어머니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 어머니는 일단 오늘 밤은 지내고 보자, 나오는 물은 양동이로 받든지 해서 임시변통하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게 똥물인지 아닌지 지금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수돗물이나 빗물일 수도 있는데 요즘은 수돗물이나 빗물이나 똥물이나 마찬가지긴 하지만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빗물이나 수돗물이 똥물이 된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것은 수도국 사람들뿐이다, 수도국장이 수돗물은 안 먹고 생수를 먹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면 세상이 말세가 된 것이다, 라고 개탄하고 나머지는 내일 밝을 때 이야기하자고 했다. 아래층 사내는 하지만 내일도 물이나 그 외의 이물질이 나오거나 고칠 희망이 없으면 방을 바꾸어주든지 집을 바꾸어주든지 변기를 사용하지 말든지 하라고 버텼다. 어머니는 알았다고 했다.
철물점 주인은 이층으로 올라와 요즘 세입자들은 대단히 건방지고 요구하는 게 많다는 등의 세상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갔다. 아래층 사내는 담배를 피우며 밖에 앉아 있다가 외출에서 돌아온 나에게 전말을 이야기해주었다.
다음날은 물이 새지 않았다. 아래층 사내가 그 일로 다시 이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집을 순환하는 물은 변덕이 심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게 됐다.
※출처: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 , 서울: (주)도서출판 강,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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